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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만탄의 왕과 이름 없는 사람들: 기록되지 않은 한국 해외산림개발사

forests 2026. 5. 14. 08:25

한국은 60-70년대에 목재사업이 국가의 중요한 수출품 중 하나였다. 특히 합판 산업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컸는데, 전국 수출 대비 합판 비중이 1966년 기준 12.15%이었고, 산림청 자료를 보면 1970년대에 단일 품목 최초로 수출 1억 달러를 넘긴 대표 수출품이었다고 한다.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베르톨트 브레히트. 20세기의 정치적 격변을 정면으로 통과한 사람이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역사에 기록된 일들은 대부분 어떤 영웅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처럼 그려진다. 또는 어떤 구조적인 요인으로 인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마치 '빛이 있으라'해서 빛이 난 것처럼. 하지만 난 그 일에 종사했던 사람들의 일상과 당시의 상황, 그들의 마음가짐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질 때가 많다. 말하자면 미시사(microhistory)에 대한 관심 같은 것이고,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에 담긴 생각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책 읽는 노동자의 질문

일곱 개의 문을 가진 테베는
누가 세웠는가?
책에는 왕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 왕들이 돌덩이를 날랐던가?

그리고 수없이 파괴되었던 바빌론은
누가 그때마다 다시 세웠는가?

황금으로 빛나는 리마의 집들에서
그 건설자들은 어디에 살았는가?
중국의 만리장성이 완성된 그날 저녁,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는가?

위대한 로마는 개선문으로 가득하다.
누가 그것들을 세웠는가?

카이사르들은 누구를 이기고 개선했는가?
노래로 찬양받던 비잔티움에는
궁전만 있었던가, 그 주민들에게?

전설 속 아틀란티스에서도
바다가 그것을 삼켜버리던 그 밤,
물에 빠져가던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노예를 불러 외쳤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 혼자였던가?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했다.
그에게 요리사 하나 없었겠는가?

스페인의 펠리페는 함대가 침몰했을 때 울었다.
그 혼자만 울었던가?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누가 함께 승리했는가?

모든 페이지마다 하나의 승리.
승리자들의 연회를 누가 준비했는가?

10년마다 한 명의 위대한 인물.
그 비용은 누가 지불했는가?

이토록 많은 기록들.

이토록 많은 질문들.

 

출처: (영문 번역본) https://www.marxists.org/archive/brecht/works/1935/questions.htm (AI 번역)

 

미국에 오기 직전, 친척 어른에게 오리건으로 공부하러 간다고 했더니 당신께서 배를 타던 시절 포틀랜드에 간 적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놀랍게도 내가 지금까지 가본 다른 여러 도시들도 거의 가봤다는 것이다.(그중 어떤 도시들은 웬만한 한국인이라면 가지 않을 곳들이다.) 이 분은 선장은 아니었고 배의 꽤 높은 직책에서 일했다고 했다. 갑판장이라고 하셨나. 배를 타다가 80~90년대에 선상 화재로 부상을 입은 후 그만두었다고 들었으니, 그 기억은 40년도 더 지난 시간의 기억들일 것이다. 그 도시들 중 내가 또 가보고 싶어 그리워하는 도시들도 있었다. 당시의 모습은 어땠을까 너무나 궁금하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물어볼 수 없었고, 내가 말로 전했다고 해도 내 상상과는 큰 괴리가 있으리라 짐작한다. 대화 속에서 흘러가는 세계 도시들의 추억들을 들으며 이 분이 돌아가시면 이 기억도 사라지겠구나 생각했다. 이런 기억들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대단한 가치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대로 시간과 함께 사라지도록 하는 것은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한국인들은 기록하는 데도, 기록을 후세에 남기는 데도 소홀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산림자원개발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동남아 여러 나라의 벌채 사업에 오래 종사했던 분과 꽤 오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 기간 동안 천둥벌거숭이같던 나를 앉혀두고 집재와 운재, 임도 건설 등에 대해 알려주신 적이 있었다. 대부분은 이미 수업에서 배운 내용이었지만 깊은 현장 경험이 느껴졌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수십 년간 동남아에서 목재 생산에 경험이 있고, 나중에는 합판 사업을 하다가 큰 손실을 본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항상 이 분의 앞에 앉아 벌채와 집재, 임도 건설 등 다방면에 대한 교육을 듣고 있자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 너머에 있는 심원한 경험이 느껴지는 듯했다. 하지만 정작 그분의 경험에 대해 자세히 듣지는 못했다. 내 작은 목표 중 하나는 이 분 앞에서 당시의 경험을 자세히 듣고 기록하는 것이다. 미국 오기 전 연락드렸는데 아직은 정정하신 것 같으셨다. 예의 그 점잖은 목소리와 태도도 여전하셨다.(물론 그 분의 경험이 당시 60~70년대 임업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단정짓듯 말할 수는 없다.)

 

문제의 책. 구하고 싶지만 절판되었고 중고시장에서도 구하기 어렵다. (출처: 알리딘 중고서점)

 

그러다가 흥미로운 책을 찾았는데, 한국남방개발의 회장인 최계월 회장을 다룬 <그들은 나를 칼리만탄의 왕이라 부른다>라는 '실명'소설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벌채도 하고 유전 개발까지 성공한 사람인 것 같다. [최계월 회장]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한 최계월 회장, 젊었을 적에는 대단히 미남이었다.

 

하지만 난 이상하게도 이 책을 쓴 저자에 대해 더 관심이 생겼다. 저자는 권태호라는 분이고 80년대 드라마인 <수사반장>의 극본을 맡기도 했던 분이다. 인터넷에 이 책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를 아주 흥미롭게 회상하는 글을 작성한 것을 찾아서 재미있게 읽게 되었다. 이 분은 90년대 초에 <월간중앙>에 당시로서는 10년 전에 한국남방개발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토대로 논픽션 현상공모에 최계월 회장과 그의 기업가 정신을 담은 논픽션을 제출했는데 그게 당선이 된 모양이다. 우연히 그 글을 본 최계월 회장이 자신을 불러, '60년에 보르네오 밀림에 처음 진출하던 얘기가 (네가 쓴 부분보다 더) 재미있으니, 그 얘기를 듣고 책을 써 보라'고 권유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밤 10시에 호텔로 돌아와 새벽 4시에 최 회장에 잠에 들 때까지 옆에서 60년대 보르네오의 초기 벌채사업 진출 초기 얘기를 흥미롭게 듣고 그것을 책으로 옮긴 것이 바로 실명소설인 <그들은 나를 칼리만탄의 왕이라 부른다>이다. 자서전 형태는 자화자찬하는 형식으로 느껴지므로 그렇게 했다는 것 같다.

 

글의 뒷부분은 우여곡절 끝에 발간한 책을 어떻게 해서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8쇄까지 인쇄하도록 만들었는지에 대한 얘기다. 90년대만 해도 교보문고에서 의도적인 '책 사재기'로 베스트셀러 순위를 올리는 일이 많았다. 출판사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수십 권의 책을 사서 가는 모습을 언론에서 보도하기도 했다. 지금은 서점에 잘 보이도록 하는 것이 하나의 광고상품이 되었고, 출판시장의 규모도 줄어들어서 그런 일이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끗발'이 떨어질 때쯤에는 최계월 회장에게 부탁해 독후감 공모전을 열어 자신의 책을 8쇄까지 찍어냈다는 얘기를 하고, 그것을 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 글의 원문 링크. 작가가 쓴 글답게 아주 재미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이건산업의 솔로몬 군도 조림지 사진 (출처: 이건산업)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들은 나를 칼리만탄의 왕이라 부른다>라는 제목처럼 최계월 회장의 삶은 한 편의 소설처럼 극적이었을 것이다. 1919년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가고, 일본 제국 육군으로 복무하다가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후, 전쟁 후에는 보르네오의 벌채사업과 유전 개발까지 한 사람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모험심과 추진력, 사업 수완 같은 개인의 능력과 시대적인 흐름이 맞물려 만들어낸 특별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브레히트가 물었던 것처럼, 나는 한국의 해외산림개발사에도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누가 보르네오의 숲에 처음 길을 냈는가. 누가 나무를 베었고, 누가 그것을 강까지 옮겼으며, 누가 배에 실었는가. 낯선 열대의 습기 속에서 누가 임도를 만들고, 장비를 고치고, 밤마다 숙소로 돌아와 젖은 옷을 말렸을지. 그리고 그들은 일이 끝난 저녁 어디에서 잠들었는지.

 

기록은 영웅의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그 이름 뒤에는 그 시대를 몸으로 통과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 거대한 기록 이전의 이야기들이다. 그곳에 갔던 한국인들은 누구이며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현지 사람들과는 어떻게 지냈을까. 비가 쏟아지는 밀림에서 기계가 고장나면 어떻게 했을까. 떠나온 한국이 그리워졌을 때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공식 보고서나 회사 사사에는 잘 남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이 오히려 한 시대를 더 생생하게 보여줄 때가 있다.

 

아마도 최계월 회장의 이야기가 책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왕'처럼 특별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왕국을 몸으로 직접 움직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나무를 베었고, 누군가는 길을 닦았고, 누군가는 배를 몰았고, 누군가는 장부를 정리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몸을 다쳤고, 누군가는 실패했고, 누군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범한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이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다. 아직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있을 때, 그들이 본 숲과 바다와 항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두고 싶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역사 자료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저 조용히 사라지는 어떤 기억들은, 누군가가 그것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알아차려야 하지 않을까.

 

칼리만탄의 왕은 기록에 남았다. 그렇다면 그 숲에서 길을 낸 사람들은 어디에 남아 있는가. 그들이 지나간 항구와 강과 임도와 벌목장의 기억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무엇을 물어볼 수 있을까.